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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볼스윅. 쥬디스 볼스윅의 <진정한 성> 요약Book review 2013. 4. 18. 21:42
잭 볼스윅, 쥬디스 볼스윅의 <진정한 성> 요약
5장 동성애: 기독교적 반응
성경의 가르침과 해석 방법
성경에서 동성애 행위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곳은 다섯 군데 밖에 없다. 또한 동성애를 하나의 지향으로서 말하지 않고 동성애 행위만 언급할 뿐이다.
동성간의 성행위를 다루는 최초의 성경 본문은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이다. 에스겔은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저버리셨다고 말하며, 유다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성적 부도덕과 비정상적 정욕을 말한다. 초점은 동성애 행위 자체라기 보다는 비열한 집단 강간, 수치, 치욕 등이었다.
레위기 18:22과 20:13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린도전서 6:9-10에서도 탐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에 대해서 언급한다. 디모데전서 1:10에서도 남색하는 자에 대해서 말한다. 동성애 행위를 다루는 신약 본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로마서 1:26-27이다. 순리에 반한 역리는 보통 동성애로 해석되지만, 일부 신학자들은 역리란 변태적이고 쾌락주의적 성행위를 지칭하는 것이지, 동성애적 지향을 가진 사람의 ‘자연스러운’(순리적) 성향에 어긋나는 경우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안적 태도들
동성애에 대한 태도는 보통 4가지로 구분된다. 극단적 입장들에는 섹스를 오락 행위로 보는 태도와 동성애적 지향을 본인의 선택으로 보는 태도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성인이 합의하에 하는 관계라면 얼마든지 윤리적이고 정당하는 입장이다. 반면 후자는 동성애적 지향을 개인 선택의 결과로 보는 입장으로서, 본인의 책임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중도적 입장들에는 헌신된 관계일 경우 동성애를 수용하는 태도와 동성애자를 변화시킬 대상으로 보는 태도가 있다. 전자는 동성애 행위가 상호간에 진실한 사랑을 나누는 동성애적 관계는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본다. 이들에게 소돔과 고모라 사건은 ‘해석’에 있어서 동성애 행위보다는 포악한 강간으로 일어난 것으로 읽혀진다. 비교적 자유주의적인 신학이 옹호하는 견해다.
동성애자를 변화시킬 대상으로 보는 태도는 동성애 지향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되 동성애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들은 대부분이 그 지향을 바꿀 수 없다는 견해에 동의하면서도 성적 금욕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이들과 또 다른 그룹은 동성애적 지향을 가진 사람이 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동성애자에 대해 동정심을 품고 그들의 치유가 평생의 과정에 일어나도록 돕는 것이다.
구속적 사역
변화하기 원하는 동성애자에 대해 이 그룹이 사용하는 접근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개개인에게 초점을 둔 소그룹 중심의 ‘심리 치료’이고, 다른 하나는 살아 있는 성령 충만한 공동체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중시하는 ‘구속적 사역’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동성애자 사역 단체인 ‘사막의 강’(the Desert Stream)과 ‘생수’(Living Waters)는 성경적 모델에 기초하여 진리와 은혜를 강조한다. 이 사역은 창조와 타락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로 돌아가려는 것을 사역의 목표로 삼는다.
-창조목적: 한 성은 다른 성이 없이는 온전하지 못하다. 동성간의 성적 연합은 본래 의도된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지 못하므로 창조 목적에 합당하지 못하다.
-타락과 구속: 타락 이후 남자와 여자의 완전한 관계가 죄에 의해 손상되었다. 남성과 여성이 하나님의 길로 돌아가려면 예수님과 복음의 진리가 필요하다. 동성애자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본래 창조 목적에 따라 동성 및 이성과 올바른 관계를 개발하는 것이다. 동성 친구들과 비성적인 친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동성애자는 참된 관계와 사랑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기 시작한다.
동성애적 지향이 이성애적 지향으로 변할 수 있을까? 구속적 사역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믿는다.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눅12:34). 그들은 행동의 변화를 통해 태도와 신념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새로운 관계: 동성애적 지향과 동성애적 생활 방식은 구별해서 보아야 한다. 동성애자는 먼저 동성애 관계를 모두 청산해야 한다. 소그룹에서 동성의 사람들과 교제하다보면 정서적 친밀감을 경험할 수 있는데, 이는 성적인 관계로는 채워질 수 없는 기본 욕구다. 동성애자가 믿음의 공동체에서 동성 및 이성과 언약적 사랑을 경험할 때 치유가 일어나게 된다.
-새로운 욕구: 유혹에 저항하고 일관된 행동을 유지하는 능력은 성령에 의지할 때 얻을 수 있다.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게 될 때 동성애자라는 자아상을 벗고 하나님의 진리로 나아갈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동성애자가 장기적으로 유지해 온 관계를 끊을 때 슬픔과 상실감이 뒤따르게 된다. 이를 위해 든든한 후원은 꼭 필요하다.
게이 청소년이 자살할 확률이 2-3배 가량 높은 것은 부모와 친구들, 사회가 퍼붓는 비난과 무서운 죄책감 때문이다. 그들은 우정과 연민과 용납이 있는 분위기에서 자비와 소망을 찾을 수 있다.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관계와 정체성은 서로를 돌보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가장 잘 개발될 수 있다. 영적 정서적으로 성숙한 남녀와 바람직한 관계를 맺고, 이성과 부담 없는 우정 관계를 개발해야 한다. 동성애자를 비난하기 보다는 포용하며 진정한 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소망을 주는 믿음의 공동체에서, 기도는 심리적, 영적 치유의 중요한 요소다.
결론
이성애, 양성애, 동성애에 대한 책임있는 선택은, 우리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묻는 가정과 공동체 안에 있을 때 가능하다. 이런 면에서 동성애에는 생물-심리-사회적 차원이 있을 뿐 아니라 공동체적 차원도 있다고 주장하는 바다. 뒤에서 지원해 주는 동성애 공동체 영향력이 클수록 동성애적 지향을 가진 사람이 동성애 관계에 들어설 과정이 더 커진다. 동성애 공동체는 동성애 행위를 격려하고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구조를 제공한다. 다른 한편, 동성애적 지향을 가진 사람 중에 금욕이나 변화의 길을 택한 이들은 자기를 격려해 주고 후원하고 힘을 실어주는 기독교 공동체를 찾아나설 가능성이 높다.
창세기 기사에서 이상적인 원형은 남자와 여자의 연합이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진정한 성적 연합은 남자와 여자의 연합이다. 그렇다면 성에 관한 신학은 하나님이 우리를 남자와 여자로서 관계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도록 창조하셨다는 전제에 기초해야 한다.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과 진정한 관계를 맺으라는 명령은 이성애적 규범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타락 이후 모든 창조 세계가 변질된 것처럼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최고의 이상형에 맞는 성적 온전함을 이룰 순 없다. 건전하고 진정한 성을 개발하는 데 핵심 요인은 성경에 기초한 개인적 가치 체계 안에서 성적 행위를 통합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델로 삼는 것은 평생에 걸친 일부일처제의 이성애적 연합이기는 하지만, 스스로를 향한 하나님의 이상형을 좇는 모든 이들에게 긍휼의 마음으로 지지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고난당하신 예수님께서 그 길을 아시고, 넘어질 때 용서하시며, 상처받을 때 치유하시고, 이 모든 것을 통해 살아계신 주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누리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