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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의 <한번은,>, 이봄.Book review 2011. 8. 1. 23:03
"세상의 모든 사진, 시간 속의 모든 '한 번은'(once), 한 편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1. 사진은 가볍지 않다(?)
사진을 주제로 한 책은 내가 좋아하는 분야라서, 쉬어가는 기분으로 집어 들었다. 그런데 아뿔사! 어떤 주제이든지, 저자가 진지하고 제대로 다룬 책은, 가볍지 않고 의미있는 무게를 가지기 마련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사진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다시 한 번 재발견함과 동시에 사진가로서의 책무성이 얼마나 진지하고 무거운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흔히들 사진을 취미로, 재미삼아 찍는다고 한다. 그러나 빔 벤더스(영화감독 겸 사진가)는 가볍게 찍는 사진조차도, 고유한 공간과 시간을 가진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예를 들면, 폰카를 찍을 때 얼짱 각도를 유념하여 찍는 행위도, 어쩌면 잊혀질 수 있는 시간을 담는 행위라는 점에서 고유하고 유일무이하다는 것이다.
2. 사진과 이야기의 관계
이 책은 다른 사진책에 비해, 저자가 사진에 담겨진 스토리를 중요시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혀진다. 벤더스는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들을 때로는 기행문처럼, 일기처럼 소개한다. 그리고 늘 '한번은'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고, 한번은 저런 일이 있었다는 방식으로 이야기와 사진을 함께 묶어 낸다. 그리고 중간 중간, 사진집 사이에 큰 사이즈의 사진을 반을 접어서 넣어 놓아서, 읽고 보는 재미를 배가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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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후로(약 10년전), 계속해서 사진을 담아 왔다. 그 때마다 사진 속에 얽힌 이야기들과 생각을 풀어서 함께 포스팅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떤 면에서 글과 사진은 서로를 더 밝게 빛나게 해주지만, 대부분은 서로를 방해할 때가 더 많은 듯 하다. 주로 어줍잖고 깊이 없는 글이 사진을 많이 망쳐낸다. 그래서 사진과 함께 놓여진 글은 모 아니면 도다. 즉, 사진의 풍부한 의미를 드러내주거나, 사진의 의미를 제한해 버린다. 나의 경우에는 깊이 없는 글 때문에 사진의 의미를 제한해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래서 요즘 내가 취하는 방식은, 사진과 관련해서 아주 짧은 생각을 남기거나, 아예 객관적인 정보만 남겨버리는 것이다. 그랬더니, 오히려 사진이 좀 더 신비해 보이는 듯했다는 사실! 그러나 벤더스는 스토리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서, 그가 말한대로, 독특하고 고유해서 너무나 소중한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들어낸다. 이것이 대가와 아마추어의 차이겠지?
3. 기독교 세계관으로 사진 찍기
요즘 내가 사진에 대해 가지는 고민은, 어떻게 기독교적 사진이 가능하며, 그것을 충실하게 구현해 내는가이다. 벤더스가 말하는 것처럼, 사진은 하나의 '관점'이기에, 내가 가진 '관점'(기독교 세계관)이 반영된 사진을 잘 찍고 싶다. 그러나 내가 이전에 찍어 왔던 사진 속에서 발견한 것은, 기독교 세계관이 반영된 사진이라기 보다는, '외로움', '따뜻함', '고요함' 등의 개인적인 '정서'와 관련된 것들이었다(물론, 이것도 연관이 없지는 않겠지만, 다소 모호하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내가 기독교 복음을 내 삶 속에 체화된 진리로 살아내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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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절미하고, 사진에 관심이 있거나, 사진으로 다양한 스토리를 좀 더 의미있게 남기고 싶거나, 나만의 독특한 관점이 반영된 사진을 충실하게 찍어 보고 싶은 사람은 꼭 이 책을 구입해서 가끔씩 꺼내어, 그가 쓴 글과 사진을 천천히 읽어보길 바란다.
*이번에 빔 벤더스의 영화 'Pina'(3D)가 나온다고 하는데, 트레일러 영상이 심상치 않다!